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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달란트에 대한 오해(마태복음 25:14-30)160918
  

제목: 달란트에 대한 오해    본문: 마태복음 25:14-30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세 가지를 오해했다. 일에 대한 오해, 주인의 인격에 대한 오해 그리고 한 달란트의 가치에 대한 오해. 살다보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해하기가 쉽다. 그것은 내가 볼 수 있는 면이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자주 충고해주는 말은 지금 네가 느끼는 것을 전부라고 믿지 말고, 지금 소중하게 느끼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해로 사람을 잃으면 나중에 돌이키기 어렵게 된다.
   첫 번째, 일에 대한 오해: 창1:28에 보면 일이란 타락 이전에 주셨던 축복 중의 하나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종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주인에게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인에게 칭찬도 책망도 듣지 않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나를 선택하여 재물을 맡겼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주님을 섬기면서 마음 가운데 어떤 부담거리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다. 그 일을 하고 싶은데 손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인정받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회피한다면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그 일을 통해서 어떤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막중한 사명을 받았다. 그 일은 그의 전직이나 세상적인 인정으로 비교해보면 아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 주님을 제대로 만난 후에 이전에 소중하게 여기던 일은 아무 가치 없는 일이 되었다. 율법주의자들로부터 존경받고 보장받던 안락한 삶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오히려 자기가 탄압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소중한 사명으로 받았다. 불신자의 눈으로 보면 그는 기득권을 버리고, 불행해졌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의 인생은 가장 행복한 인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바울이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을 소중히 여긴 증거들(롬1:1-2, 롬1:16). 바울은 이렇게 자기가 맡고 있는 복음의 사명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25:14절에 천국을 무엇과 같다고 말씀하시는가.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종들을 불러 자기 재물을 맡김과 같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기 능력에 따라 차등을 두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겼다. 그런데 액수의 크기를 비교하거나 차별하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말씀은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천국에서도 차등이 있지만 비교나 차별은 없다.
   두 번째, 주인의 인격에 대한 오해: 일에 대한 오해보다도 더 근원적인 오해는 주인에 대한 오해이다. 20절에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습니다” 당신은 완악한 사람입니다. 괜히 이 재물을 잘못 다루었다가 손실을 보면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기에 감추어두었습니다. 이 종이 주인을 오해한 것은 종의 주관적 평가였으며, 주인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가였다. 주인은 이 종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종이 주인의 인격과 목적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주인은 그의 말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27절) 그렇게 네가 믿었다면 안전한 은행에 맡겨 놓았다가 이자라도 내어놓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맡겨주셨다. 그 양은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이다. 마지막 날에 주님은 우리에게 맡기셨던 일평생 동안에 무엇을 남겼는지 회계하자고 하실 것이다. 네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에게 무엇으로 기쁨을 주었느냐? 내가 네게 준 기회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사람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지 못할 것의 편차가 별로 크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을 오해하면 그분을 가까이 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가까이 하지 않아 얻지 못한 편차가 너무나 크다. 영생과 영벌의 차이가 난다.
   마16장에서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대답했다. 주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는가? 그 평가에 부화뇌동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끝으로 달란트에 대한 오해: 한 달란트는 6000드라크마, 1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는 적어도 노동자의 20년 품삯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만 받아도 적어도 4억원을 맡기신 것이다. 천국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대로 일을 맡기신 것이다. 성도들은 자기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 내게 맡기신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달란트이다.
   19절)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쌔," 이 주인은 멀리 갈 것이고, 오래 지체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돌아와 회계할 것이다. 사도행전1:11에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을 목격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당대에 돌아오실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2천년을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으셨다.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믿음을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다시 오실 것인데 오실 때에는 마치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와 같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여 오래 기다리다가 신랑을 맞이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부족하여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나중에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을 해도 열어주지 않으셨다. 주님은 기회를 주셨고 나중에 결산하신다. 그 기회에 대한 결산을 요구하신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능력과 형편에 따라 소중한 시간과 일과 사람들을 맡기셨다. 어떤  사람에게 더 크고 좋은 일을 맡긴 것이 아니다. 공통적인 축복은 주인이 그 신뢰하는 종들에게 자기의 소중한 재산을 맡겼다는 사실이다. 주인이 내게 맡기신 달란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주인의 신뢰가 크다. 그것을 주인이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한 달란트는 엄청나게 큰 신임이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 아니라 믿는 종에게는 전적인 신뢰를 베푸시는 주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천국처럼 행복하게 주인을 위해 일하고 주인의 기쁨에 동참할 영예를 얻는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인과의 관계가 천국에서의 만족을 결정짓는다.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달란트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자녀, 가족, 직장,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이익을 남겨서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가 매우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제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인의 신뢰를 감사하자. 이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주님께서 내게 소중한 일을 맡기셨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주님 앞에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자.

[인쇄하기] 2016-09-27 22: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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