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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옛 언약과 새 언약(2016.12.4)
  

제목:  옛 언약과 새 언약    본문: 요한일서2:7~11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와 규칙들은 유치원에서 다 배웁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은 초등부와 유치부에서 다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펜실바니아에서 17세기 삶을 고집하는 종교분파인 Amish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자동차나 전화도 사용하지 않고 공교육도 8학년으로 끝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을 주일학교에서 다 배웠는데 문제는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법을 피할 궁리를 많이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다음과 같이 두 문장으로 요약해보았습니다. 첫째, 계명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둘째, 사람은 세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다.
    우선 첫째, 본문은 “새 계명”을 말씀하는데 이것이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말입니다. 레19:18에서 모세에게 처음 말씀하셨던 것을 예수님이 요한복음13:34에서 다시 말씀하시고,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다시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할 때마다 사랑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레위기에서는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레위기 19장에서는 율법을 한 가지씩 주실 때 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또는 ‘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나는 지엄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계명’이라는 말은 그만큼 두렵고 엄중한 뜻입니다.
사랑의 기준에 있어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더 큽니다. 인간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자기를 위한다고 하는 일마다 오히려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것도 예수 믿은 지 일 년 안에 이미 다 배웠지만, 배운 대로 하지 않고 내 방식과 습성대로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압니다. 나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하여 죄 없는 몸으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실 만큼 큰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의 값 지불만큼 크게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런 식으로 사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 요구의 뜻을 알고는 더 어려워집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늘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는 못한다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8절에는 사랑이라는 계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어둠이 지나갔고 참 빛이 벌써 비추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둘째,  사람은 세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다 즉, ‘셋이 아니라 둘’로 나누어집니다. 9절 부터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9절에 나오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 입니다. 10절에 나오는 사람은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11절에 나오는 사람은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세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입니다.
9절에 나오는 사람은 자기의 주장과 달리 실상은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미워하는 것입니다. 즉, 무관심도 결국은 미워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고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10절 말씀에서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에 따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사랑이 가능해 졌습니다. 예전엔 어둠에 거했지만 이미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쳤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써서 밝은 곳으로 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이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손해 볼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값이 너무 크다고 포기하거나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교회가 교회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참 빛을 비추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아직도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원전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동굴 속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줄도 모르고 괌의 한 동굴에 숨어 살던 일본군 패잔병 요꼬이가 1972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얼마나 허무한 세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한 구원의 빛이 비추었는데 그 빛을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있다면 어리석은 삶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단계에서는 재미가 있어서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단계에서는 알면서 적극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점차 빛에서 어둠의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 빛이 비추었으니 그 안에 들어가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빛이신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서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실천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과 빛의 차이를 잘 알면서 어둠 가운데에서 뛰쳐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둠에서 뛰쳐나가 그리스도의 광명한 빛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 방식은 잘못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교과서는 예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 새 계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빛 가운데도 들어가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쇄하기] 2017-01-01 08: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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