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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딤후1:8-14)2017.1.8
  

 제목: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본문:딤후1:8-14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편지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기록한 편지이다. 로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가 다시 갇혀서 이제 사형 날짜를 받아놓고 디모데에게 편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열심히 전했으니까 축복을 주실 줄 알았는데 그의 최종 모습은 사형이다. 그럴 때 바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이렇게 충성했는데 고작 이거야?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바울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대충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초대한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8절에서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디모데는 지금 바울 선생님이 열심히 선교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것에 대해 실의의 빠져 있는데, 정작 바울은 자신 있게 “나를 따라 오라”고 말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초대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바울이 이렇게 담대하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이 직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선택해놓고서도 마음이 변한다. 직장도, 친구도, 물건도.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도 변한다면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얼마나 불안할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 제자, 성도 삼으신 것은 어쩌다가 인턴 뽑듯이 뽑아놓고 아닌 것 같으면 버릴 요량으로 뽑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아무 때나 아무나 대충 뽑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목적이 이미 있었고, 선택하신 결과라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 충성하면 결코 욕볼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서 욕을 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바울은 8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나는 절대로 불행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속수무책으로 버려두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오히려 끝까지 비밀을 지키고 마지막 비난까지 대신 당하라고 한다. 그것이 세상에서 충성할 때 얻는 결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불러놓고 책임도 안 져주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직분을 맡기고 책임도 안 져줄 거면서, 헌신하고, 바치고, 더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혹시 부모가 자녀를 포기하는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두 번째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는 바울의 초대에 대하여 우리도 순종하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12절)“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보험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약조건을 잘 알고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할 때에 그분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그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냥 대충 생각하기에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사업, 공부, 건강하고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바울처럼 감옥에 갇혀 사형수가 되어 있을 때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여호수아가 늙어서 임종을 앞두고 후손들의 신앙을 보니까 걱정이 생겼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책임 있는 선택을 요구한 것이다.
예수님의 선택은 어떤가?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기가 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 바쳐 죽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택한 것을 위해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자녀들, 사회가 책임지려면 너무나 고통스럽다. 가정에서 자녀 하나를 잘못 배출해 놓으면 치안에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여러분이 선택한 배우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다. 배우자나 자녀나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낳은 사람을 내가 소중히 여기면 실제로 소중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한번 선택하시면 끝까지 책임을 져준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금욕주의나 새마을정신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안 먹고 안 쓰고, 아끼고, 술 담배 안하고, 바람 안 피고, 남의 것 안 빼앗고, 이런 정도로. 1C로마를 지배했던 스토아철학을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실제로 스토아철학과 기독교는 한때 조화를 이루어 공생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 영향을 받고, 그 한 분파가 수도원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스토아철학자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이다. 그들은 인간의 도리라는 덕목을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고 금욕했을 뿐이지 거기에서 어떤 기쁨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저 술 담배 안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이 안에는 예수 안에서 주시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할 때, 안 먹고 안 쓴 이유는 자식들은 이 고생 안 하게 해주자. 즉, 한 세대 이후를 위한 고생이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의 기쁨, 하나님께서 택해주신 그 선택 안에서의 안도감은 내 당대에 누리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끝으로 세 번째,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바울이 초대하는 이유는? 앞서가는 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매사에 그리스도를 따라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가고, 우리는 또 디모데를 따라가고, 이것을 통해서 2천년이라는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바로 내 앞에 말씀을 따라가신 그분들의 믿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따라간다면 복음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편협하고,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참 값진 일이다. 그 고생은 나중에 주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고,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함이라.” 주님 앞에서 큰 보상이 있는 고난인 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새해에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나의 시간과 물질, 재능, 모든 것을 헌신하자. 그것은 결코 헛된 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쇄하기] 2017-01-19 19: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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