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oard

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고후7:5-11 위로자 디도
  

 제목:  "위로자 디도"     본문:고린도후서 7:5-11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에 또 하나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눈물로 쓴 편지” 또는 “엄한 편지”라 불리는 서신이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후서를 보낸 것이다. “눈물로 쓴 편지”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지만 그 내용이 고린도후서에 몇 가지 언급이 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지적하는 문제들은 지도자들을 따라 파당을 짓는 문제, 교인간 송사문제, 음행문제(교회 지도자 가운데 심지어 아버지의 첩과 부정한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었다), 은사의 서열을 다투는 일,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등으로 교회가 무질서하고 윤리성이 떨어지고, 시끄러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 이어 눈물로 쓴 편지에서도 이런 죄악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책망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윤리적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용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은사도 받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고린도지역의 낮은 윤리의식이 교회 안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런 죄를 지으면서도 은사를 사모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었다. 바울은 눈물로 쓴 편지에서 신랄하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바울에 대하여 오히려 반감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야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 고린도에서는 그런 건 죄도 아니야”라고 하면서 거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를 보냈는가? 그런 뜨거운 문제를 다루는 그 편지를 디도편에 전달하고, 가서 그들에게 바로 가르치게 한 것이다. 바울은 계속 이동하며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에, 더구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바울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디도를 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된다. 잘 하는 일을 칭찬하고, 포상하는 일이라면 쉬울 텐데. 그러나 반감을 가진 사람을 가르치고 설득하여 화목하게 만드는 임무를 받았으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고린도는 그리스의 맨 아래 쪽에 있는 섬이고, 위로 올라가면 데살로니가, 베레아, 빌립보 등이 속한 마게도냐가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올라와 마게도냐에서 사역하면서(고후7:5), "육체가 편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고린도에 보냈던 디도가 임무를 완수하고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와서 바울을 위로했다(고후7:6절).
디도는 '눈물로 쓴 편지'를 들고 고린도교회에 내려가서 열심히 가르치고,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죄에서 돌아서게 한 후에 마게도냐로 올라와서 바울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디도가 가지고 온 고린도교회의 변화된 소식을 듣고 바울은 위로받고, 기뻐했다.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심부름을 한 사람이 누군가? 바로 그의 영적 아들인 디도.
어떻게 보면 디모데는 바울이 3년 동안 든든하게 세워놓은 에베소교회에 후임자로 들어간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이미 조직이 잘 된 교회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무시 받지 않을까(딤전4:12), 자주 나는 속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좀 쓰라(딤전5:23).
그런데 그레데 사람들은 도덕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딛1:12). 기원전 6백 년 전 그레데의 시인 에피메니데스가 자기 동족들을 책망하면서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쓴 글을 인용하면서 디도에게 당부하기를 “그런 사람들을 잘 가르쳐서 교회의 지도자들로 세우라”는 것이었다. 바울사도는 이런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디모데같이 어리고 병약한 제자가 아니라 어떤 문제라도 잘 처리한 경력이 있는 디도같은 사람을 보낸 것이다.
딤후4:10에 보면 디도가 달마디아로 갔다고 나오는데, 그곳은 이태리반도 바다건너편, 오늘날 보스니아 지역이다. 그레데에서 직선거리로 1,300km, 바닷길로 매우 먼 거리다. 디도는 그 와중에 그레데사역을 잘 마치고 달마디아 이방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보내어졌던 것이다. 그만큼 바울에게는 디도처럼 든든한 일꾼이 있었던 것이다.
디도는 바울의 파송을 받아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지적에 대해 품고 있던 오해와 반감을 바꾸어 이제는 바울에 대한 사모함과 자기들의 잘못에 대한 애통함과 바울을 위한 열심이 되게 만들었다(고후7:7). 불과 몇 개월 만에 복음을 잘 가르쳐서 바울을 오해하던 부분을 풀어주고 화목하게 한 것이다. 
바울은 디도편에 편지를 보내놓고서 공연히 고린도교회를 근심하게 한 것은 아닐까 후회하기도 했으나(고후7:8), 도리어 그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근심한 결과 회개에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사람들은 칭찬만 좋아하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하기는 어렵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그렇게 어렵게 눈물로 편지를 보내고 고민했던 것이다.
우리도 카톡메시지 '전송'버튼을 눌러놓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바울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디도편에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내고 나서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근심하면서 보냈는데 그 편지를 받아본 고린도교회가 근심과 달리 회개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디도가 가지고 온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들의 죄악을 근심하면서 회개했다. 그런 근심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7:10)이다. 이런 근심은 회개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므로 좋은 것이다. 이런 근심은 털어버리지 말고 꼭 붙잡고 회개에 이를 때까지 근심해야 한다. 죄를 짓고서도 근심이 들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다. 죄를 지으면 양심이 근심하는 것이 정상이다.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디도와 같은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가운데 보내셔서 이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을 아파하며 그들을 인도하는 일을 위해 부르셨다. 이 일을 위한 수고를 통하여 주님께 기쁜 소식을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보고를 많이 자주 올려드릴 수 있는 디도와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부르신 일이다. 우리가 그 편지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인쇄하기] 2017-02-08 09:00:12


     
  


관리자로그인~~ 전체 298개 - 현재 5/30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261 신원섭 2017-03-14 1328
신원섭 2017-02-08 1581
259 신원섭 2017-02-08 1520
258 신원섭 2017-02-08 1429
257 신원섭 2017-01-19 1395
256 신원섭 2017-01-19 1382
255 신원섭 2017-01-19 1084
254 신원섭 2017-01-19 1177
253 신원섭 2017-01-19 1146
252 신원섭 2017-01-01 1148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