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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요14;16-20 다른 보혜사 2017.5.28
  

요한복음14:16-20   제목: 다른 보혜사  2017.5.28.주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행전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 능력은 커녕 무기력함을 느낀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마음속에 모시고 산다고 노래하고 기도도 하는데 능력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땅 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는 것은 나중이고, 당장 직장에서 신자라고 드러내기조차 힘겨워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약속하신 행1:8의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 본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성령님은 누구신가?: 롬8:9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Paraklete) 즉, 옆에서 격려해주시는 분, 법정의 변호인이라는 일상적인 용어이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격체로서 우리 삶에 일상적으로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2.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 1) 롬8:26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대신 간구하신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성령님은 이미 다 아시고 대신 기도하고 계신다. 2) 요14:26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해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행할 바를 알려주시고 지도해주신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할이다. 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 번이라도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마음 속으로부터 이러한 성령님의 촉구를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3. 성령님은 어디 계시나?: 그분은 옆에 계실 뿐 아니라(paraklete) 우리 안에 계신다. 16절)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절)...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이처럼 성령님은 신자의 마음과 삶 속에 들어와 함께 계신다.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던 말씀들이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견된다. 우리는 진짜 좋은 것이라면 옆에 두는 것만으로는 아쉽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 삶 속으로 들어오기 원하신다. 그런데 성령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셔 들이지 않고 곁에 계신 것으로 만족한다면 나는 “착탈식”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때로는 떼어놓고,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올 테니까” 하는 식으로 살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성령님을 어디에 모셔야 하는가?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혼연일체가 되어주셔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만족하게 누릴 수 있다. 그래서 16, 17, 20절에서 ‘함께 있는 단계’, ‘그 안에 동거 동락하는 단계’로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이다. 
끝으로 4. 성령 충만한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진리의 영을 소유하는 방법은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성경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인생의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와 교훈들이 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에 물으면 성령께서 친절하게 행복과 능력의 원리들을 가르쳐 주신다.
사도행전2:37-38절에서 성령충만을 받는 분명한 순서를 찾을 수 있다. 베드로는 먼저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회개란 죄를 완전히 버리고 떠나는 것, 단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삶의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구원받은 후에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남아 있는 죄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성령 충만을 기대하지 말라. 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작은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 '작은 죄'는 없다. 모든 죄는 심각한 죄이지 '작은 죄'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작은 죄'라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죄'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켜야 할 만큼 심각한 죄이다. 권능은 원하는데 죄는 포기할 수 없다면 안 된다. ‘작은 죄'라고 변명할 수 없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받았나? 성령께서 구원을 주도하셨다. 그러나 성령을 마음속의 주인의 자리에 모셔들이는 것은 나중에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사도행전에는 믿고 즉시 성령을 받는 경우도 나온다. 그러므로 한 가지 구절을 일반화해서 교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루살렘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령과의 관계를 누리라
살전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사모하는 능력은 누가 주시는가? 성령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그분의 능력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즉, 나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신다.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은 우리들 즉 ‘나’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 소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에 있다. 그러니까 능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능력에 관심을 두지 말라. 그것은 아빠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 손에 들려진 선물에 관심을 두는 자녀와 같은 것이다. 선물을 안 사온 아빠는 반갑지 않다.
그래서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능력 이전에 아버지와의 일대일의 관계를 누리시라. 능력이 아니라 관계를 이야기하라. 관계는 간과해버리고 능력이라는 부산물만 좇아가니까 우리의 신앙은 괴물이 되어 간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온 우주에서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셨을 것이다.
왜 예수 믿어도, 심지어 목회자가 되어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사랑하지 않고 성령님을 착탈식으로 대우하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인쇄하기] 2017-06-30 12: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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