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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행2:36-40 성령 받은 증거 17.6.4
  

사도행전 2:36-40 성령을 받은 증거
좋은 병원은 환자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좋은 교회는 성도의 형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세상 어떤 일을 시키기 위해 나를 끌어 가려고 하지 않고, 먼저 나 자신에게 주목해주신다. 주님은 나를 사랑해주시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신다. 그리고 나서 “나와 함께 가자”고  주님의 일에 초청하신다. 나의 보폭과 연약함을 아시고 먼저 내게로 내려와 주신다. 나는 그런 예수님이 좋다.
내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 첫 번째 우주를 지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주가 저절로 생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간 중에서 우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호킹 박사일 것이다. 무신론자인 그는 우주는 지금도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말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면 그 넓이는 상상하기조차 벅차다. 우주가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운행한다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맞지 않는다.
두 번째, 하나님이 자기를 희생시켜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창1:3, 요1:1). 만일 하나님이 어떤 재료를 필요로 하셨다면 “그 재료는 누가 만들었을까” 라는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철학에서 말하는 '최초의 원인'이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셨다. 나는 이런 방식의 권위자의 사랑을 거절하고 싶지 않다. 그냥 고마울 뿐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죄인인데 그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셨다. 이렇게 좋은 제안을 왜 거절하는가?
세 번째, 성경의 예언과 성취의 증거들을 믿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이 구약시대에 기록됐다는 것은 고대 사본들이 증명한다. 그런데 구약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일례로 이사야는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마치 십자가 현장을 목격한 사람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예언하고 신약에서는 성취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말씀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무엇이든 따져서 믿는 성격이다. 이 모든 성경을 따져보니까 앞뒤가 맞는다. 그래서 믿는다.
네 번째,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믿기 때문이다. 진리는 하나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모든 종교가 서로를 인정해준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복음주의 기독교는 목숨을 버려서라도 진리의 배타성을 타협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성경이 말하는 인류 보편가치를 좋아한다. 불교도 사랑을 말하지만 그 깊이와 크기는 다르다. 물론 표면적 용어는 같아보이지만 '창조주가 나를 사랑하여 자기를 희생시키셨다'는 개념은 없다. 현대의 모든 인권과 법의 근본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 용서하라, 화평을 이루라”  하는 성경적 가치관에 뿌리를 박고 있다(마22:39, 요13:34).
끝으로, 내가 주님께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좋다. 내가 주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것이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내가 더 높여드리고 더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도 나이와 체면이 있지만 그분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좋다. 우리 인류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찬양할 분은 우리 주님뿐이다. 나는 또 실패하고 좌절해서 바닥에 엎드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처럼 느껴져도 괜찮다. 나는 낮아져도 상관  없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당시 모든 문명권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중 한 번이라도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다. 그런데 오긴 왔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 120명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하시니까 말이 통하게 되었다. 베드로가 히브리말로 설교했는데 이들이 각기 자기 모국어로 알아들은 이적이었다. 이렇게  모든 이방에서 온 순례자들이 최초로 성령을 받았다.
14절) 이후에 베드로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설교를 시작한다. 앞에 나오는 1절부터 13절까지 ‘새 술에 취했다’는 조롱을 들은 청중들과 14절부터 나오는 청중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상황에서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우선 앞서 있었던 성령강림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고, 다윗이 예언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즉 성경의 예언이 때가 차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증언했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23절)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절) “하나님께서 그를...살리셨으니”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 다 봤지? 그것은 사실이었지? 그런데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그런데 너희가 이방인의 손을 빌어서 그를 잡아 죽였지?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살려내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들 중 상당 수는 불과 두 달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데모하던 사람들이다. "너희들의 죄가 어떤 죄인지 알겠지?" 그랬더니 이런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이 설교를 듣은 자들이 죄가 깨달아졌다. 이들은 “우리가 어찌할꼬(37절)” 하며 두려워했다.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렇게 성령이 말씀을 통해 죄를 지적하시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죄가 깨달아지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회개는 죄에 대하여 완전히 단념, 포기하는 것이다. ‘죄를 짓고 또 회개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신도의 수가 하루에 삼천 명이나 더했다. 베드로가 그런 부흥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령이 임하시니까 부수적인 효과로 수적 부흥도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이들이 성령 받았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진술한다고 해서 그 사건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패역한 세대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더니 이런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한 일이 무엇인가? 42절에 성령이 충만하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말씀, 즉 예수님을 더욱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신생아가 살아 있으면 본능적으로 젖을 사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벧전2:2).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는지 아닌지 충만한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내가 말씀을 사모하는가'를 보면 된다.

성령은 양적으로 더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질적인 차이는 있다.본문에도 성령 충만을 받았다는 진술은 없지만, 증거는 나타난다. 성령은 내가 구원받을 때 이미 내 안에 들어오셨다. 그러나 그분을 충만하게 소유하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성도는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46절)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7절)하나님을 찬미,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니라. 이것은 성전에서도 모이고, 집에서도 모였다는 것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좋다. 체험은 중요하지 않다.
   끝으로 이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 누가 당신의 문제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주나—그런 교회에 소속되지 않으면 영적인 고아가 된다. 본문에 어디를 봐도 성령을 받았다는 진술이 없다. 그러나 이미 성령을 받은 증거들이 나타났다. 성령은 어떤 능력으로 나타내기 이전에 내면적 변화를 일으키신다. 각 사람 속에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난다. 가장 먼저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5).

[인쇄하기] 2017-06-30 12: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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