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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3:3-13네가 어디 있느냐?170702
  

창세기 3:3-13   제목: 네가 어디 있느냐  2017.7.2.주일
갈등관계가 있을 때 대개 성숙한 쪽이 먼저 문제를 해결을 시작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허영심에 미혹된 여자는 범죄 했고, 남편에게도 권하여 함께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허영심으로 먹었고, 눈이 밝아지기는 밝아졌는데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졌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면서 두려움과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급기야 친밀하게 느껴지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8절에 보면 바로 그날, 그들이 범죄 하던 그날, 하나님이 지체 없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숨어버린 것은 이미 관계가 깨어졌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실 때 먼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숨바꼭질하자는 것이 아니라 범죄 한 결과로 어떻게 되었는가 자각하게 해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먼저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용서를 구하여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고, 그런 식으로 먼저 관계를 끊으시는 분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고 우리와 고장 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오는 분이시다. 나는 그런 성품이 너무나 좋습니다.
창세기 1:1-2:3까지 나오는 ‘엘로힘’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2:4부터 인간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나옵니다. 그 뜻은 ‘언약을 주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을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으니 “나는 여호와”라고 답하셨습니다.
정작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와인데 아담에게 찾아오십니다. “하와야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책임권자인 아담을 찾아오셨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어서 믿음이 연약한, 하와를 찾아와서 먼저 넘어뜨렸다. 약한 자를 공격하는 것은 사단의 변함없는 전략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기면 거기서부터 생길 테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실 때 강한 자, 책임권자를 찾아오십니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십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이 멋있고 고맙고 좋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너 지금 얼마나 힘드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예, 매 순간 주님 안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시139편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인생이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다락방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주앞에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시야에 사각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도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거리낄 것이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4:9에서 보면 동생을 쳐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이 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찾아와서 진단하시는 하나님, 삶의 위치를 점검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인에게 제 입으로 그 죄를 이실직고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회개를 촉구하실 때 회개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해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 물으셨는데 아담이 동문서답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거든 문제의 핵심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이런  죄를 저질렀습니다.”
3:10절에서 아담의 변명실력을 보십시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나이다.”  우리 성경에는 “하나님의 소리”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성경에 보면 아담은 “당신의 소리”(콜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바뀐 것입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호칭이 바뀝니다. 부부싸움도 하면 ‘여보 당신’에서 ‘너’ ‘야’가 됩니다. 말이 아주 짧아지고 뒤에 붙였던 존칭 어미도 다 떨어집니다. 아담이 반성하는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여호와”도 “엘로힘”도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된 것입니다. 언약의 관계가 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원래 2:25에서 그들은 벗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변했습니다. 안 봐도 되는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원인은 벗었기 때문이 아니라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기대하신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다시 핵심을 물으십니다.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그런데 또 변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교묘한 기술로 '뒤집기'(레슬링 용어)를 시도합니다. 논리적으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이라며 이전에 금지하신 언약을 거론하시니까 12절에서 아담도 이 여자를 주신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주장하여 책임을 하나님쪽으로 떠넘깁니다.
이 여자가 어떤 존재입니까?하나님이 아담에게 처음 그녀를 보여주셨을 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너무 마음에 든다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감사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이렇게 두번째 호칭에 변화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범죄의 원인은 여자에게 있고, 그 원천적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회개는 커녕 하나님의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입장입니다.
8번에서 하와의 변명실력도 보십시오. 하와는 이 논쟁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심문을 당하는 사람은 유리합니다. 조서를 다 꼼꼼히 읽어보고 답변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13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온전한 회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죄를 지은 사실 자체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와의 관심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행복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타락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 없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아지지도,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두려움과 수치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사랑을 고백하던 남편이 이렇게 막말을 퍼붓고 있는데 그런 남편의 말에 반박할 겨를도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질문에 한 마디라도 밀리면, 타이밍을 놓치면 그 벌을 혼자 다 받을 것 같으니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떨어내고 있습니다. 위기가 되면 누구도 방패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이때 만일 아담이 정직하게 “내가 아내를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벌을 다 받겠으니 제 아내를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여자는 저에게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구요. 제 아내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축복 중에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은 이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에덴에서 자손 대대로 행복하게 살게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한 현장에,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에게 감사를 표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고 대드는 현장에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다시금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 다시 한 번 축복된 관계로 나아가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십시오.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축복된 관계는 누릴 수 없습니다. 책임전가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한 치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인쇄하기] 2017-07-30 13: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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