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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4:1-7소원이 아름다운 사람170709
  

창세기 4:1-7  소원이 아름다운 사람
소원은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보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더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그러므로 오늘날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가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언어면로 보더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주장보다는 마음 속 동기가 중요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하지만 각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현실과 같습니다. 우리 주변 강대국들은 남북한이 통일되어 잘 살게 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초등학생들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통일되면 북한의 2천만을 어떻게 먹여 살리나 걱정부터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도 보이든 안 보이든 나 자신이 산 제물로 하나님 앞에 기쁘게 드려져야하는데, 우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산한다면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중심을 빼놓고라도 겉모습으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우리 가치관 전체가 겉모습을 가꾸는 것에 많이 훈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이 표면적 율법준수로는 가장 열심히라고 인정받았지만 예수님과는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 ‘소원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중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이 말씀은 성령 안에서 진실하게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이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의 예배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가인과 아벨입니다. 세상에 사람이라고는 오직 아담부부밖에 없을 때, 그들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에덴에서 이들에게 주셨던 축복(생육, 번성, 충만 다스리는 권세)을 다 거두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은 자연을 지배할 권세를 유지시켜주셨습니다. 다만 고생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남자는 노동의 고생, 여자는 출산의 고생.그래서 에덴에서 추방된 후에 아담부부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와는 그 아들의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에덴에서 추방되어 척박한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남편을 보면서 하와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에덴에서 내가 선악과를 남편에게 먹이지만 않았다면 이런 고생하는 땅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하루 하루가 고된 이 부부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아기로 태어난 가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해봅니다. TV에서 흉악범의 얼굴이 나올 때 결코 흉악하게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가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으로서, 더구나 아기로 태어난 가인의 모습이 얼마나 예뻤을까요.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아담 하와 부부는 실낙원 이후로 가장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를 아주 버리지는 않으셨구나!”
혹시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이 바로 이 아이가 아닐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가인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 아들도 아벨도 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농사를 짓던 가인과 양을 기르던 아벨이 하나님께 추수 감사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벨은 최선을 다해 선별된 제물을 드린 증거가 많습니다. 4절에 첫 새끼를 구별해 두었다가 드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부위인 기름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레위기가 아직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기 법을 여기에 소급적용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전통은 이때부터 있었다가 나중에 성문화 되었다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결국 한 덩어리라는 것이 구약과 신약의 근간에 흐르는 제사와 예배의 기본정신입니다(사1:13, 롬12:1, 히11:4). 그래서 가인의 제물 이전에 가인의 삶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가인의 악행을 지적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카리브해주변 미국 플로리다나 멕시코 지역에서는 악어가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있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열면 큰 일 납니다. 실제로 지난 주에 멕시코 칸쿤에서 출입금지 호수에 오줌누러 들어갔다가 팔 하나를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물이 열납되는 것을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벨의 젖은 고기와 가인의 마른 곡식 중에서 어떤 것에 불이 잘 붙을까요? 자기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동생의 제물이 열납되는 것을 보고 가인은 화를 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화를 낸 것은 또 다른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마5:23에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보다 형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느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 속 생각과 소원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점점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비교하고 질투하는 데는 민감하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는 둔감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 속에는 형제를 축복하고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질투하고 경쟁하는 마음이 더 강렬하게 작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죄의 소원을 다스릴 능력도 주셨습니다. 성도는 소원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주 소박한 것에도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오늘도 마음 속 동기와 소원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의 삶과 그의 예배는 받으시지만 소원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인쇄하기] 2017-07-30 13: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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