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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8:13-22믿음은 기다림이다170723
  

창 8:13-22 믿음은 기다림이다-요약
기차역에 상행선 하행선 플랫폼(platform)이 있는 것처럼 과학의 세계에는 두 개의 플랫폼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론입니다. 그러면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과학자이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소설가냐? 그게 아니라 양편 모두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원수지간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일의 배후에서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눅4:6, 요12:31, 엡2:2). 마치 영화 매트릭스가 표현하려고 했던 구성입니다.
지금 보신 비디오는 MBC에서 방영된 것인데,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면 어느 태고적에 어떤 미치광이가 저런 만년설이 뒤덮인 5천 미터 높이의 산에 저런 목조구조물을 만들었을까요? 가능성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명백한 증거들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이런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밀쳐버리고 맙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믿음은 기다림이다”입니다.
1. 노아가 홍수일지를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13절: 본즉):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노아가 홍수사건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땅을 덮었고(7:11), 7월17일날 방주가 드디어 아라랏산 기슭에 머물렀습니다(8:4). 그리고 601년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위에서 물이 걷혔고(8:13), 그해 2월 27일에 땅이 마른 것을 확인 한 후에, 드디어 2월 27일에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8:16).
노아는 방주 안에 있으면서 이 모든 외부의 변화들; 물의 깊이, 날짜, 기간, 주위 환경 등을 자세히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변화를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리며 기록한 것입니다. 물의 깊이도 재보고, 주변 환경의 변화도 기록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관찰하고 일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방주에 태우셨지만 결국 나가서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관찰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2. 노아가 기다린 것은 무엇인가?(16절: 너는...나오고):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노아가 무엇을 기다렸는가’입니다. 601년 2월 27일 즉 홍수가 시작된 지 1년하고도 10일이 더 지난 후에, 그리고 비가 그치고 방주가 땅에 닿은 날로부터도 7개월 열흘 즉 220일을 더 기다린 후에 드디어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8:16). 비가 그치고 햇볕이 찬란한데 덥고, 습하고 냄새나는 방주 안에서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긴 기간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으니 나올 때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원리입니다. 노아가 관찰한 데이터상으로는 홍수가 그친 것을 오래 전에 확인했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주변 환경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과학적 판단을 믿고 행동하지 않고 우직하게 하나님의 하선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노아가 자기의 판단을 믿고 너무 일찍 나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둘기가 두 번째 나갔다 돌아왔을 때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는데 감람나무는 습한 저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봉우리만 아니라 저지대도 물이 빠졌다는 증거입니다. 그 때 방주문을 열고 나갔다면? 아직 마르지 않은 늪지대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나가면 수렁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짐승과 사람이 피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직 나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갈 때도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아무도 방주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런 자들이 있었다고 해도 비도 오지 않는데, 밖으로 잠긴 방주 안에서 7일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달라고 떼를 써서 내려버렸을 것입니다. 방주에 타자마자 바로 홍수가 나고 둥실 떠오를 줄 알았다면 결코 그 답답한 방주 안에서 일주일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보험 들듯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면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을 고려하지 않으면 바깥 세상이 육신적으로 더 편하고 살기 좋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들어갈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어갔으니까 나갈 때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자신보다 가족들의 믿음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욥의 아내와 비교가 됩니다(욥2:9). 비가 그치고 배가 땅에 닿고 220일이 지나도록 요지부동하고 있는 노아에게 “지금 당신은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하지 않고 끝까지 가장과 함께 합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정이 참 훌륭한 것입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안 하며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적용: 노아는 방주 안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바깥의 사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은 세상의 형편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나가서 살아야 하는 세상은 저 바깥입니다. 신앙생활을 교회 안에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우리의 사명이 저 바깥에 있습니다. 노아는 지속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었고, 세상 물정에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징조들을 정확하게 진단하면서 믿음으로 주님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실한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태만하게 누워서 감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나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정보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벌겠구나? 여러 가지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내 판단을 따라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가라” 하는 음성을 들려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기다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쇄하기] 2017-07-30 13: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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