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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예수님이 오신 목적(딤전1:12-17)2016.12.18.주일
  

제목: 예수님이 오신 목적  본문:디모데전서 1:12-17
   과거의 진공관식 TV는 너무나 크고 불편했지만 오늘날 TV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고, 화질도 사실감이 좋아졌다. 구약시대 신앙생활은 절기와 장소에 구애를 받는 불편한 제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신 제사는 구약시대의 번거로운 모든 제사를 합친 것보다 더 완벽한 제사이다(히9:12). 우리의 예배는 각 잡고 틀 잡고 형식에 맞춰 드리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아기가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자신을 드려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잘 깨닫고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듣는 것이다.
   예수님은 2천년전 유대땅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불순종하여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대로 하나님과 화목한 모습으로 회복시킬 목적으로 오신 것이다.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요5:24).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인생이 변화되었다. 나다나엘, 니고데모,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삭개오, 막달라 마리아 등.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삶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면 더 이상 이전의 삶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5공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날리던 이근안경감은 불법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어, 유죄판결을 받게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이다. 5공화국이 끝난 후 그는 10년 넘게 도피하다가 자수하여 7년 실형을 살았고, 2008년 장로교 군소교단에서 목사안수까지 받았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도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하겠다.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결국 2012년에 소속 교단에서 목사직이 박탈당했다.
   사도바울은 초대교회 신자들을 박해하러 다니던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스데반집사를 죽이는 일에 책임자였다(행7:58, 8:1). 바울은 15절에 고백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울은 죄없는 사람들을 박해했다는 점에서 이근안씨와 닮았지만 자신의 죄를 온전히 회개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그가 사도라는 직함을 가지고 당당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순교한 스데반의 가족들이 반대시위라도 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의 회개를 온전한 회기라고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를 더 이상 정죄하지 않고 지지해주었다. 유다서23절에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처럼 죄는 철저히 미워하되, 그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12절) 주님은 바울을 충성된 자로 여겨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주신다. 아직 능력이 없지만 "능하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주님이 직분을 맡겨주실 때 거절할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순종하면 감당할 능력을 길러주신다.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신을 믿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선택하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주님이 직분을 맡기신다면, 그분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된 길이다.  사람은 모두 상황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지만 주님은 결코 약속을 변개하지 않으신다.
   13절) 바울은 전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았다. 바울이 회개한 후에도 계속 자책하고, 자신의 과거에 붙들려 있었다면 그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가 지은 죄가 무거워 좌초될 지경이었지만 주님의 은혜는 그 죄짐을 띄울 수 있을 만큼 풍성하였다(14절).
   예수님은 마9:13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롬3:23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고한다. 우리의진정한 모습은 죄인이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믿는 자들은 '의인'으로 여겨주시기로 약속하셨다(롬4:6).
   좌초된 배는 무엇이 문제인가? 물이 부족한 것, 짐이 무거운 배가 뜨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인간이 얼마나 무거운 죄인인가? 하나님의 독생자가 희생되어야 할만큼 죄인이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사울은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요16:2)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찾아오셨다. 좌초된 배와같은 인생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셔서 은혜의 바다를 자유로이 항해하여 주님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의 괴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셨던 것처럼 우리 인생도 새로이 빚으시길 원하신다.
   붕어빵은 왜 닮았는가? 물으면 바보, 같은 틀에서 구웠기 때문이다. 16절) 주님이 틀이 되어 바울을 찍어내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틀에서 우리를 찍어내기를 원하신다. 그점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소망이다. 죄인의 괴수가 변하여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의 본이 된 것처럼 자주 죄에 넘어지는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틀에서 바울을 찍어내신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찍어내고 싶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주님의 목적이 우리의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나의 모습을 볼 때 불가능할 것같지만 사도바울을 찍어내신 그 틀에서 나를 빚으실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신을 믿지 말고 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시라.
[인쇄하기] 2017-01-19 19: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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