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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히2:1-4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본문17.2.5.일.
  

제목: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본문: 히2:1-4
이른 봄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떠내려 오는 얼음덩어리 속에 얼어있는 물고기를 쪼아먹기 위해 독수리들이 얼음을 꽉 붙잡고 쪼아 먹으면서 급류를 내려간다. 그런데 가끔 폭포에 떨어져 죽는 독수리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독수리들은 끝까지 고기를 쪼아 먹다가 마지막 순간에 얼음을 버리고 날아가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포에 이르러 얼음을 차버리고 점프하는 순간  발톱이 얼어붙은 사실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천하에 천적이 없는 독수리가 욕심 때문에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는 경고는 유대교 출신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예수님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말씀이다. 유대교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 해도 그들이 보기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죄인이며,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1세기 성도들에게 유대교의 옛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뒤로 끌어당기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가 있는데 순종은 하지 않으면서, 종교적 위안을 추구하니까 이전의 습성이나 물질이나 쾌락이 주는 위안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그래서 1절 말씀에 “들은 것(예수님의 복음)에 더욱 유념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않음이 공정하게 보응을 받았거늘” 여기에서 천사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란 구약의 율법을 말한다. 구약의 율법의 말씀도 효력이 있어서 그것을 어긴 자들이 큰 벌을 받아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다, 3-4절을 풀어 보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님에게서 듣고, 다음은 주님께로부터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까지 확증해준 것인데 하나님도 이 말씀을 증언하고 계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념해야할 (이미)"들은 것"(복음)이다.
2:2 (예수님보다 한참 신분이 낮은)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을 어긴 자들도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직접 보내어 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자들은 얼마나 더 큰 형벌을 받겠느냐? 그러면 구약의 율법을 어겨서 형벌을 받은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삼상 4:17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엘리제사장의 갑작스런 죽음 등, 그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제 복음주의의 “값싼 은혜: 대충 믿고,  세상을 함께 즐기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가면 얼마나 좋을까?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이런 아슬아슬 외줄타기식 신앙생활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아야 한다. 독수리가 폭포에 다다르기 전에 얼음을 차버리고 날아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기 생각일 뿐이다.
새의 IQ: 겨울에 새들이 먹을 게 없으니까 베란다에 곡식을 좀 놓아주었다. 그런데 한번 먹고 간 새가 다음 날에 다시 오지 않는다. 전날 포식한 사실과 장소를 잊어버린 것 같다. 한참 후에 또 다른 종류의 새가 와서 먹는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한량없는 은혜를 주셔서 어떤 때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이 세상의 맛을 보고 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을 일어버린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거꾸로 올라가야 하는데 급류같은 세상에서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의 신앙은 옛날보다 점점 더 아는 것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주님의 말씀에 만족스럽게 순종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안타깝다.
야고보서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는 뜻이다. 나이아가라의 독수리가 폭포 앞에 가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전할 수 없다. 마귀가 우리의 발톱을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 그 힘이 얼마나 센지 한 번도 죄악에 빠져본 적이 없는 분은 모를 것이다.
4절에, 하나님 자신도 이 큰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고 계신다. 가운데는 부사구이다. 어떻게 증언하신다고?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들을 보여주심으로,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다양한 방법,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신다.
그러나 표적은 시간이 지나면 단지 한 사건이라고만 여겨진다. 1990년 10월3일 베를린 장벽이 어떻게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하는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된 것이 어떻게 레이건과 고르바쵸프가 회담 몇 번 해가지고 소수민족들을 독립국가로 해방시켜주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세계사 속의 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더욱 유념해야 한다. 1절 말씀을 꽉 붙들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주님의 복음에 유념하지 않고,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상한 것만 묻는다. “하나님이 죄 없는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나를 구원하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런 것이 궁금하고 감격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둥, 신비한 비유를 깨달아야 구원을 받는 다는 둥, 예수님의 자리에 교주를 앉히려고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미국선교사들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믿는 방식을 따라간다. 한국 신학교 교수님들이 90%가 미국에서 공부한 분들이다. 그래서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도 그대로 따라간다. 미국식 복음주의에 잘못은 간단히 말하면 값싼 은혜다.
미국 기독교 문화를 보면 전부 탕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주신다(요일1:9). 그렇다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해주신다. 살인 간음 해도? 물론 맞는 말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크다. 그런데 자칫 나이아가라 독수리 신세 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할 마음을 주시면 좋겠지만 마귀가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못 날아간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들은 말씀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떠내려간 사례가 많다. 그냥 폭포로 떨어져 죽은 독수리가 많다.

가룟유다는 그냥 흘러 떠내려갔다. 미국인 80%가 자기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인구가 3억5천만 명인데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10%에 불과, 그러니까 신자라고 생각하는데 룰루랄라 어딘론가 돌아다닌다. “이렇게 놀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날아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얼음을 차버리고 쪼아먹던 것, 나를 자꾸 뒤로 잡아끌던 문화와 즐기던 것들을 걷어차 버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를 용서하시지만 흠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아버지를 떠난 적이 없는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그렇지 그가 아버지의 마음과 일심동체가 되어 기쁨으로 일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모델이다.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바람직한 교회를 설명한 것이다. 딤6:14, 벧3: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것이 율법주의가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님과 동행하면 타국에 가서 이것저것 맛보고 오지 않아도 더 흥미진진하고 더 짜릿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타락한 미국식 복음주의, 값싼 은혜가 우리에게 “아무래도 괜찮다. 결국 돌아올 수 있다” 이런 신호를 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면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여러분 무슨 죄를 지었어도 주님께로 돌아오시면 된다 그러나 그 맛을 너무 오래 즐기면 결정적인 순간에 발톱이 안 빠진다는 것이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들은 것에 더 유념해야 한다.


[인쇄하기] 2017-03-14 19: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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