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oard

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히3:12-14 매일 피차 권면하여 17.2.12
  


제목: 매일 피차 권면하여   본문: 히3:12-14
디지털 사진은 Bitmap과 Vector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비트맵 사진은 확대하면 바둑판처럼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색깔 같지만 점마다 미세한 변화가 있어서 한 비트가 빠지면 점으로 남는다. 한 점이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벡터이미지는 점이 아니라 수학계산식으로 비슷한 색상을 같은 색으로 대충 무리지어 점이 아니라 면으로 표현한다. 비트맵사진에서는 점 하나가 소중하다. 아무리 선진 복지국가가 되어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지 않으면 나에게 소용 없는 것이다.
긴 행렬가운데 내가 힘들고 지쳐서 낙오하고 있다면 지휘관이 행군을 멈추고 “어? 아무개가 없다” 하며 바로 발견해야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어제보다 더 많네”하면서 나를 버리고 그냥 간다면, 나는 그 대열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다. 비트맵이미지를 Zoom-in 해보면 빠진 점이 보인다. 그러면 미완성, 불완전한 사진이다. 그런데 벡터이미지는 비슷한 색깔로 통일시켜버리기 때문에 옆에 있는 똑같은 색깔로 칠해버려면 그만이다. 소중한 개인은 없다.
“히브리서”는 제목이 “히브리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히브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명칭보다 더 포괄적인 명칭이다. 히브리서의 주요내용은 유대교에서 나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박해와 편견을 피하여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라는 권면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 “마음을 완고히 하지 말라,” “든든히 붙어라,”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소망의 확신과 굳게 붙잡아라,”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확고히 잡으라.” 등 표현은 다르지만 중심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들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형식주의 의식주의의 유대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한다. 맨 처음에는 ①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위대하다. 선지자들은 계시를 받아서 전한 사신들이지만 예수님은 그 메시지를 말씀하신 왕이시다. ②예수님은 천사보다 우월하시다. 유대인들은 시내산 율법을 천사를 통해 받았다고 생각하며 천사를 숭배한다. 그러나 천사는 피조물에 불과하고 예수님은 그 천사들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③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하다. 모세는 율법을 선포한 민족의 아버지, 유대교에서 최고 권위자이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부리던 종이고, 예수님은 그 집의 아들이다. 그러니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 붙들어라. ④예수님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에게 준 가나안의 안식보다 더 좋은 천국의 안식을 주신다.
⑤예수님은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보다 위대하시다. 대제사장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아론계열의 제사장은 자기 죄를 먼저 속죄하고서 민족을 위해 속죄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시다. 그러니 예수님 붙들어라. ⑥예수님의 희생제사는 짐승제사와 달리, 매번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예수님만 믿으면 다시는 불완전한 짐승제물이 필요 없다. 그러니 어떤 제사가 더 좋은 제사냐?  예수님이 이렇게 높고 우월하시니 그분을 꼭 붙잡아 그분의 복음에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해라. 이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가룟유다처럼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요즘 청소년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신앙인으로 생존하는 비율이 10%가 안 된다. 왜 대학졸업 때까지를 말하는가? 그때까지 믿음을 잘 지키면 평생 믿게 되니까. 교회에서 살아남은 경우를 보니까 대부분 부모가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거나 또는 교회에서 적어도 한 사람이상이 개인적인 관심을 쏟아준 경우라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착한 아이들은 믿음이 없어도 교회에 따라온다. 그러나 대학생이후에는 아무리 착해도 믿어지지 않으면 안 온다. 그러니까 청소년들에게는 살아있는 믿음과 사랑을 보여줘서 납득, 증명시켜줘야 한다. 그런 확인과정이 거쳐야 이후에도 스스로 믿음을 지킨다. 그런데 부모들은 “학교, 사회생활만 잘 하면 되지. 나중에라도 주님이 불러주시지 않겠나” 하며 안일하게 생각한다.
히브리서는 그 내용을 계속 당부한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하라.” 1세기 히브리인들에게 문제는 예수님 믿다가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위험인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①물질만능주의: 물질과 신앙사이에서 신앙을 잠시 내려놓고 물질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 ②쾌락주의: 처음에는, '잠시 즐기고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귀는 바보가 아니다. 계속 '1자'로된 낚시바늘로 미끼만 던져주는 낚시꾼이 어디 있을까? 큰 물고기들이 가느다란 낚싯줄에 걸려나오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한심한가? 마귀에게 낚아채이면 신앙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③개인주의: “나만 살면 된다”는 주의. 신앙생활도 혼자서 수도승처럼, 아무하고도 관계 맺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매일 피차 권면”할 대상이 없으므로 절대로 믿음이 성장할 수 없다.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무엇을 권면하라고? 이것은 달리 말하면 서로 신앙생활을 도와주라는 말이다. ‘오늘’이라 일컫는 날이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아직 죽지 않고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아직 구원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를 말한다.
교회는 벡터이미지처럼 비슷한 색깔로 대충 칠해 놓은 그림이 아니라 한 점 한 점 소중하게 점을 찍어 놓은 비트맵 그림이다. 나 하나의 존재가 소중하다. 영어 동사 중에서 우리말로 해석이 애매한 것이 “to matter”이다. 그 동사의 주어가 중요하다는 뜻의 1형식 동사이다. You matter, I matter. 네가 중요하다, 내가 중요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좋은 공동체, 혹은 아무리 좋은 집을 사면 무엇하나? 가족 중 하나가 떠내려갔다면 그 좋은 집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슬픈 집이 된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집은 그런 그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나? 그 큰 그림에서 점 하나 빠졌다고 무슨 큰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림을 Zoom-in 해보시며 빠진 점 하나를 슬퍼하신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끼리는 “어제보다 더 많아요." "누가 빠졌다는 거예요” 한다. 여리고에서 수많은 군중이 따랐지만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숨은 죄인 삭개오 한 사람을 바라보신다(눅19). 무리가 밀치고 혼잡한 바쁜 여정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뒤로 돌아서 그 옷자락을 만진 여인 한 사람을 주목하신다(마9).
우리 자녀들은 미전도종족보다 못한 세대를 살아갈 것이다. 미전도 종족들은 복음 자체를 못 들어봤기 때문에 복음을 반기며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먹고 살만한 미전도종족들은 유럽과 미국의 불신자들처럼 “나도 다 안다. 나도 다녀봤다.

그러니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이 살아 남느냐? 부모로부터 좋은 신앙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 교회에서 개인적인 관심을 받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살아남더라.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매일 피차 권면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재난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 서로 뺨을 때려주면서 서로 죽음의 잠을 깨워주면서 기다렸다는 고백을 듣는다. 옆의 분들에게 고백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당신 한 사람이 그렇게 소중합니다. You matter.”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종교 다원주의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서로 뺨을 때려주면서 매일 피차 권면합시다.
군중을 보면 “여러분, 사랑합니다” 하면서 개인적으로 찾아가면 아는 척도 안 하는 3류 정치인들도 득표를 위해서라도 자기 지역구의 장례식은 다 챙기려 한다. 그런데 교회가 '군중'에 만족하여 '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 기회가 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 있으라고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받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교리논쟁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한 번 구원한 자는 무슨 죄를 지어도 결국은 구원하신다. 아르미니안 주의: 구원의 책임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두 가지를 다 말한다. 흘러 떠내려 갈 수 있으니까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는 것이고, 얻은 구원을 상실할 수 있으니까 붙어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쪼록 매일 피차 권면하라. 믿음으로 서로를 돕는 이 관계 속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아름다운 교회 내 한 점이 소중한 교회 그런 가정, 그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인쇄하기] 2017-03-14 19:25:27


     
  


관리자로그인~~ 전체 298개 - 현재 4/30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271 신원섭 2017-05-29 1574
270 신원섭 2017-05-29 1460
269 신원섭 2017-05-29 1711
268 신원섭 2017-04-28 1540
267 신원섭 2017-04-28 1479
266 신원섭 2017-04-28 1441
265 신원섭 2017-03-14 1621
264 신원섭 2017-03-14 1687
263 신원섭 2017-03-14 1378
신원섭 2017-03-14 1390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