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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27:15-30불행의씨앗-거짓말 171008
  

창27:15-30불행의씨앗-거짓말 171008
지난주 불행의 씨앗1-편애를 집중해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거짓말을 집중해서 나눕니다. 본문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형제, 그리고 모친 리브가, 이 세 사람은 승부욕에 있어서는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리브가는 남편 이삭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믿음대로 일을 추진하고, 에서와 야곱 쌍둥이는 원래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경쟁한다. 반면에 그 아버지 이삭은 우유부단한 사람, 무엇 하나 자기가 결정하기보다는 젊어서부터 아버지가 해주는 대로 사는 부잣집 아들의 모습이다.
축복을 한자어로 풀어봤더니 영어로는 Blessing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축’은 빌어준다. 기원한다. 그리고 ‘복’은 그 내용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 그에 따르는 기쁨’이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이, 내가 추구해서 얻은 것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서 그가 나에게 복을 빌어주고, 부산물로 복을 받을 때 진정한 ‘축’과 ‘복’이 함께 있는 것이다.
영적인 축복도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얻었을 때 누리는 것이어야지, “누가 나의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건 말건 상관없다. 내가 많이 얻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야곱과 같이 피곤한 인생이 된다. 그는 복을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하여 남편도 속인다. 결과적으로 가족간에 해체가 일어나버린다.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할 조건이 많지만 결국 불행한 가족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어차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족을 축복하기로 예정하셨는데, 부모는 편애하고, 형제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당연히 받을 것을 너무나도 비싼 값을 지불하여 얻는다.
시로 되어 있는 이삭의 축복을 보면, 그냥 립서비스나 덕담수준이다. 말로는 뭐는 못해줍니까?그런데 이게 무엇이길래 이것을 위해서 아버지, 남편, 형을 속이고, 이것이 뭐라고 가족이 원수가 됩니까?
리브가와 야곱이 작당하여 늙고 눈멀어 판단력이 둔해진 이삭을 속이는 방법을 보니 에서의 옷을 입혀서 후각을 속이고(15절), 털이 많은 에서로 변장하기 위해 염소 털을 붙여서 촉각을 속이고(16절), 17절에서는 평소 에서가 요리하던 방식으로 별미와 떡을 만들어서 미각을 속인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야곱의 손에 들려주고 아버지에게 들여보낸다. 야곱은 형의 괄괄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청각도 속인다. 그랬더니 뭔가 이상하다 싶은지 이삭이 “네가 누구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나는 아버지의 맡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 마음껏 내게 복 주십시오.”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직도 믿지 못하고 한 가지를 더 묻는다. “네가 사냥하러 간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요리까지 해가지고 왔느냐?” 끝으로 아버지의 논리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로 쉽게 만나게 하셔서 철저하게 속인다. 하나님의 이름까지 도용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얻어내려는 장자권의 내용은, 만민 가운데 복을 빌어주는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볼 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렇게 반칙을 해서라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는 것이 맞느냐? 이런 신앙 윤리의 문제가 남아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꿩 잡는게 매”라는 식으로 잘못된 방법으로라도 목적만 성취하면 되는 것인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주간에 도색잡지 Playboy의 창업자 휴 해프너가 91세로 죽었다. 그는 20세기 청교도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유연애의 문을 연 사람이다. 즉 아무나하고 자고 놀고 하는 것을 문을 열어 놓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인생에 세 가지 아이러니가 있는데 1) 그 부모가 독실한 청교도 신앙의 집안이라는 점, 2) 그 잡지의 창간을 위한 창업자금을 댄 사람이 바로 그 어머니라는 점, 청교도의 깨끗한 신앙을 물려받은 그의 어머니가 이 도색잡지의 창간을 위해 당시 1천불을 투자했다. 말이 안 된다. 거기서 더 큰 아이러니가 남아 있다. 3) 그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너 이 사업을 하지만 결국은 선교사가 되기 바란다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눈 먼 이삭인가? 아무나 별미를 만들어 와도 기특하게 축복하는 분입니까? 처음 창간호부터 대박, 완판. 그 수익의 상당부분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아들이 선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을 포주로 만듭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복을 얻어내면 되는 것이냐? 도색잡지를 만들어서 번 돈으로 헌금만 많이 하면 인정해주시는 분인가? 결과가 과정과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 원래 하나님은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선택하셨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언약의 계승자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불필요하게 형과 원수가 되어 에서의 후손 에돔족속은 성경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야곱의 후손의 옆구리의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도 에돔의 후손이다. 야곱이 형과 원수를 맺은 것은 계속해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가만히 형제애를 지키면서, 부모들도 편애하지 않고 신뢰를 유지했다면 오히려 에서가 그 본성대로 산에서 사냥하고, 더 깊은 산을 좋아해서 집을 떠나 살면서,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들어오면서 “형이 부모님을 모시지 못해서 미안하다”하면서 철철이 사냥한 고기를 보내고, 생활비도 보내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복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 불필요한 원수를 만들게 되고, 원수가 내 목을 겨눈다. 어차피 받을 것을 그런 값지불을 하면서 받으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나중에 자기도 그대로 당한다.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첫날밤을 치루고 보니까 레아였다. 결과적으로 20년 동안이나 외가에서 임금을 착취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편애하던 요셉을 형들이 미움하여 노예로 팔아버리고 들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인다. 자기가 속인 대로 자기도 자녀들에게 속아서 슬픈 노년을 보낸다. 당연히 받을 복을 사방팔방 돌아서 가게 되었다. 창39:9 모든 죄의 일차적 피해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누구를 속이든 그 거짓말고 속임수의 일차적의 피해자는 하나님이시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보디발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속였을 때도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베드로가 책망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를 속이든지 그것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입으로 작은 것을 말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크다.
기차역에는 상행선과 하행선이 있다. 가운데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려고 움직이는 거리는 1미터밖에 안 된다. 1미터를 이쪽으로 가면 서울이요, 저쪽으로 가면 부산이다. 그런데 서울에 가려고 했는데 부산에 데려다 놓았다고 불평한다. “나는 불과 1미터 움직인 것밖에 없는데 나를 왜 4백km나 옮겨 놓으셨어요?” 달리 말하면, 말 한 마디 한 것밖에 없는데, Yes와 No를 바꿔 말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항의할 수 있는가?우리의 거짓이 그렇게 큰 차이를 가져다 준다. “나는 Yes. No바꿔 말한 것밖에 없는데 왜 지옥에 와 있어요?” 주님은 “네가 선택했느니라” 하실 것이다(계속)

[인쇄하기] 2017-10-31 2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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