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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세기35:1-11영적인 추수 2017.11.19.주일
  

감사는 성숙한 사람의 증거이다. 성숙한 사람이 아니면 감사할 수 없다. 타이타닉호가 유빙과 충돌하여 침몰할 때, 배에서 17명의 승객을 차가운 얼음물에서 건져낸 사람이 죽기 전에 회고록을 남겼는데 그의 평생에 감사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만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희귀한 현상이다.
누가복음17장에도 고침받은 10명의 나병환자 중 1명만이 돌아와서 감사했다고 기록한다. 그나마 그 한 사람 조차도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신앙생활한다고,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 중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20세기초 미국의 기독교 사상가, 교육가, 헬렌켈러, 1968년 타계한 위대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평생 시각과 청각에 중복장애를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많아서 그것을 생각하느라 나에게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고백을 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헬렌켈러여사의 형편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받은 것이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미 많이 주신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한 두가지 불편한 것만 불평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자매, 그녀는 걷는 것조차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휠테어도 움직일 힘도 없어서 전동 휠체어를 탄다. 그녀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을 작사했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에게 주신 것을 그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인본주의적으로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하면 그런 분들은 마인드콘트롤을 잘 해서 매사에 좋은 면만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우리가 농사 지은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와 은혜를 빚지고 살고 있는지 헤아려보아야 한다. 28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야곱은 형의 원한을 사서 더 이상 집에서 살지 못하고 외가로 도망간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의 외가까지는 약800km정도, 그 길을 가면서 얼마나 비참했을까? 형이 무서운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여러 날을 별을 보며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잤을까?돌베개를 베고 자는데, 벧엘에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무조건적인 약속을 해주신다. 그날 밤 이후로 야곱은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이제는 과거로부터 도망가는 인생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세겜에서 10년여를 더 달다가 드디어 고향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약속을 잘 지키셨지만 야곱은 지체하고 머뭇거리느라 세겜에서 10여년을 낭비하고 있었다.세겜에서 벧엘까지 약 30km 밖에 안 되는데 야곱은 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고 있었을까; 고향에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벧엘에 다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 소득의 10분의 1을 드리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외가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하란에서 20년 동안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부자가 되어 가나안에 돌아와서는 벧엘에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다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제 때가 되었구나 하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20년 전 일이지만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이행해야지 생각할 것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겜에서 10년을 머뭇거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세겜의 추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구실삼아 세겜 사람들을 학살함으로 수백 배로 원수를 갚았다. 이제 야곱은 30년 만에 또 다시 위기를 만났다. 세겜 사람들이 죽이려고 달려들 것같았다. 이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래서 황급히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간다.
무사히 평탄하게 살던 야곱이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벧엘로 올라간다. “올라가다가 죽어도 좋다. 가서 예배드리고 죽어도 좋다.” 이에 대하여 9절에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라고 기록한다. 어디에서 돌아왔다고? 벌써 가난안에 돌아와서 세겜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그러나 “세겜에서 돌아왔다”고 기록하지 않고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기록한다. 10년 동안은 몸만 돌아왔지 영혼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겜에서 살았던 10년은 무효, 시간낭비였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지 않고 마당만 밟고 가면 시간낭비만 한 것이다.
형편 나아지면 열심히 섬기고 봉사도 해야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세겜에서의 삶이다. 가나안에 돌아왔으면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약속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30년 전 하란으로 도망가던 그 밤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켜야 한다. 그 때의 급하고 간절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형편이 너무 좋다. 우리 조상들은 순교의 각오로 신앙을 지켜야만 했다. 우리는 이제 먹고 사는 것은 걱정 하지 않으니까 신앙이 나태해졌다.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을 보면 어느 시대보다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충족된 것 같으니까?영적으로는 이런 거지가 없다. 21세기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은 영적으로는 거지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조금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의지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뢰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물질세상에서 그저 열등한 삶을 사는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돈도 많이 못벌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믿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추수감사주일에 당연히 누리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으면 살 수도, 가질 수도, 누릴 수도 없던 것들이다. 병원에 입원해보면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 그러나 정상으로 돌아오면 건강에 대한 감사를 잊기 쉽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당연시하여 착각하고 산다. 마음 가운데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면 가장 철이 든 신앙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세겜에 머물 때는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서원제를 드렸더니 이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35:9)라고 기록한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기 전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쓰레기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쉽다. 이제 주변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께로, 벧엘로 올라갑시다.

[인쇄하기] 2017-12-23 16: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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