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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39장 요셉의 형통. 2017.12.3.주일
  

‘형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야할까?요셉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면 먼저 그는 부잣집아들로 태어났다. 그것도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형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17세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80km나 되는 길을 갔는데 형들이 그를 종으로 팔아 애굽으로 가게 만들었다.
부잣집 아들이 노예로 팔렸으니 얼마나 억울한가? 그런데 요셉은 다시 주인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이렇게 아래로 향하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39장은 요셉을 “형통한 사람”이라고 세 번(2,3,23절)이나 말한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도 요셉이 형통하다고, 보디발도, 23절에서 간수장도 그를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게 형통이라면 형통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2절에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종으로 있는데 무슨 형통인가?
3절에서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보았더라. 형통이라고 하면 이렇게 좋은 요트를 타고, 이정도 많은 돈을 타야 형통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것처럼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이 아닌가?그런데 보디발이 본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 그러면 불신자인 보디발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나?”이것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보디발이 요셉을 통하여 경험한 바, 그를 가정총무를 삼아 소유를 다 맡겼다. 어디에 투자를 하든, 무슨 농사를 짓든, 얼마나 많은 일꾼을 고용을 하든, 품삯을 얼마를 주든 상관하지 않는다. 요셉에게 맡겨놓고 안심한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보고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그 애굽사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요셉을 위하여 복을 그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 누가 보더라도 몫이 좋으니까 장사가 잘 되는구나 집을 잘 지어놓으니 손님이 많이 오는구나. 이런 개념이 아니라 이것은 분명 요셉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셉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 보디발이 복 받을 일을 한 게 뭐가 있나? 보디발이 하나님을 믿은 단서는 없다. 다만 그가 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셉에게 재산을 맡긴 것밖에 없다. 그 이후로 그의 집이 형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디발이 하나님을 믿은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은 사람을 보고 주시는 것이지 환경을 보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른 사람에 비해 좋은 여건에 두지 않으셨어도, 비록 밑으로 내려가는 상황이라도 그래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심으로서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는 간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일 수밖에 없는 그런 형통말이다. 보디발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일을 맡겼을 뿐이다.
그러면 보디발이 말하는 형통이란 무엇인가? 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요셉에게 맡겨서 일이 잘 되고,  가축이 새끼를 잘 낳고,  눈앞에 보이는 실용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요셉에게 맡긴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믿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 무엇인가? 신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형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이란 말씀에 얼마나 수종하며 사느냐 여기에 달린 것이다.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율법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원인을 붙잡지 않고 결과만 붙잡으려면 결과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씨앗을 심지 않은 상태에서 형통을 거두려고 하니까 자주 좌절하게 된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이 형통이지 무엇이 형통이겠나?이 세상에서 누리는 형통과 비교할 수 없는 궁극적인 형통이 아니겠는가?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과 세상이 말하는 형통 사이에서 어떤 것을 따라가야 하나?

이것은 우리가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가는 문제이다. 만약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말대로 했다면 그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형통이 바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자기의 요청대로 동침했다면 남편에게 일러 바쳤을까?오히려 요셉을 칭찬했을 것이다. 요셉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해주었을 것이다. 자기의 최측근으로 여겼을 것이다.(롬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자기들끼리 인정해줍니다. “그건 죄도 아니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해.” 이런 식으로 서로 용서해주고, 서로 이해해주고, 또 서로 위로해주고, 심지어 서로 영웅으로 만들어준다. 너는 정말 대단해. 이런 식으로 요셉이 눈앞에 다가온 그 형통의 길을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그 주변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9절)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보디발의 아내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수치스러운 것을 나중이고, 우선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이것은 죄라고 이 말은 보디발의 아내를 정죄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앞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서 죄를 짓기도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라틴어로 '코람데오'라고 한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11절에 집안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단 둘이 있고, 비밀이 보장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요셉은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상대방을 정죄하는 말이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는 심히 불쾌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성도는 존재 자체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특별히 악을 도모하는 사람들에게 성도의 등장은 불쾌한 일이다. 그들이 게획한 대로 일이 잘 성사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아주 불쾌한 일이다. 불의와 타협하면 당장에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그 앞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결국에 가서 형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용인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결국 나를 망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어디로 가야되느냐?세상적인 형통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형통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악과 동거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만일 세상적인 형통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형통은 포기해야 한다.
롤러코스터 신앙: 일이 잘 될 때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고 일이 잘 안될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습니까?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신앙이 롤러코스터를 올라탄 것이다.

[인쇄하기] 2017-12-23 16: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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