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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로마서 1:16-17하나님의 의. 2017.10.29.주일
  


성경구절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고 그 바뀐 인생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큰 유익을 준사례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리는 데이빗 리빙스턴은 마태복음 28:20에 영감을 받아 고국을 떠나 아프리카에 가서 빛의 삶을 살았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스가랴 3:2을 읽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다고 한다.  웨슬레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같이 부족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살던 집에 불이 나서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한다.
종교개혁자 루터를 변화시킨 말씀은 로마서1:16-17이었다. 이것은 구약의 하박국2:4을 인용한 말씀인데 하박국은 기원전 6백년 경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남왕국에서 활동했다. 이미 그때부터 의인은 자신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선언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전했다. 중세교회는 하박국으로부터 2000년, 바울로부터 1500년이 지났지만 이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종교개혁 5백주년 기념주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신학교수였던 루터가 로마 카토릭교회의 잘못된 점 95가지를 반박하는 문서를 써붙인 사건을 기념하여 10월 마지막 주일에 종교개혁주일로 지킨다.
루터는 중세교회의 전통 속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하면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다가 로마서 1:17말씀을 깨닫고 지옥형벌의 짐을 벗었다. 자신이 신학교수, 신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카톨릭 교리로는 구원의 길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고민했다. 그런데 로마서 1:17의 말씀은 루터로부터 보면 1500년 전 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을 읽었는가? 유럽이 모두 기독교 국가들이었는데, 그때까지 성경을 읽었는데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그전에 읽은 사람은 다 무엇을 읽은 것인가?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는데.
심지어 바울 자신도 기원전 600년경에 기록된 하박국2:4을 인용한 것인데, 중세교회 지도자들은 그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 자기 나름대로의 종교생활을 하고, 교회의 전통을 따랐는데, 성경을 신앙의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전통, 종교지도자들 말, 그리고 성물숭배등이 복음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교회는(오늘날 로마카토릭도 마찬가지로) 성물을 숭배한다. 예수님의 수의라든지, 십자가에 박혔던 못, 심지어 어떤 선지자들의 뼈조각같은 것들을 숭배한다. 거기에서 어떤 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영화 ‘루터’에서도 루터가 “12사도의 무덤이 스페인에만 18개가 있다”고 비꼬아 말한다. 그러니 유물 숭배사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에베소서 2:8-9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루터의 시대부터 1500년 전에 구원을 받는 길을 분명하게 알려주셨는데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할 수 없다.” 그 동안 사람들이 읽은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믿을 수 있는가.
성경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실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의 행실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것에 감사하여 선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중세교회는 ‘선행을 많이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점수가 모자라면 연옥에 가서 상당기간동안 값지불을 하거나, 후손들이 조상의 영혼을 대리하여 헌금을 많이 하거나, 공덕을 쌓으면 죽은 조상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실상 오늘날 천주교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다.
루터는 죄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려고, 자기 스스로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켜보려고, 정말로 흠결 하나 없이 티없이 거룩한 삶을 살아보려고 2년 동안 수도원에서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그러다가 얻은 결론; “이것으로는 안 된다.” 그러던 중에 롬1:17이 그의 뇌리를 때린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계시되어 나타났다. 복음만 잘 알면 된다. 복음이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그런데 그 복음이 무엇을 말하느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 말씀을 깨닫고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내 자신을 너무 학대했구나. 무서운 하나님만 생각했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다가 경고, 출교를 당한다. 그리고 살해의 위협을 느낀다. 교황청은 그를 소환한다. 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끝이다. 그는 프레데릭 제후의 후원을 받아 종교개혁의 과업을 완성한다.
오늘 이 말씀, 루터는 1500년 동안 전해 내려왔던 그 말씀을 그때에서야 신부가 되어서도 한참 지나서야 이 말씀을 깨달았는데, 이 말씀이 기록된지 2천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이 말씀을 잘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기독교의 교리는 참으로 뻔뻔스럽기 한이 없는 교리이다. “어떻게 살인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값지불도 없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러나 복음은 예수님이 그런 자들의 죄도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다만 예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마음문을 열고 받아들인 사람인가 아닌가가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결과로서 좋은 열매(마7:21)를 보여줘야 한다.
1500년 전에 기록된 로마서 1:17말씀을 깨닫고 루터의 삶이 변화되었고 중세교회를 병폐를 개혁시켜놓았는데, 그로부터 또 500년이 지난 우리는 오염되지 않은 복음을 믿고 행하고 있는가? 2천년 전에 선포되고, 5백년 전에 바로잡아 놓은 구원의 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구원을 얻으리라).” 
루터는 인간이 아무리 철저하게 회개해도 의롭게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절망하다가 하나님의 의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동적인 의’이다. 루터는 그 의가 인간 스스로 자기의 힘으로 능동적으로 도달하는 어떤 절대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그 의로구나”, “자격 없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로구나” 그것을 깨닫고 죄 짐에서 해방되었고, 신앙의 개혁자가 되었다.

[인쇄하기] 2017-12-23 16: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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