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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창45:1-15억울함을 이해하는 법 2017.12.10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인데 우리의 안보정책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하여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힘의 차이가 커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살다보면 억울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지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억울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차라리 “당신들이 나를 종으로 팔아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줄 알아!” 이렇게 호통을 치고, 벌을 준다면 간단할 텐데 형들을 억울하게 만들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자기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여러 단계의 모함으로 그들을 억울하게 만듭니다. 정탐꾼이라고, 볼모로 잡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는 은잔을 훔쳐 갔다고 또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형들은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수모를 주는가? 막내를 데리고 오는 것이 곡식을 사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나? 형들이 생각할 때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일을 통해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 때 그 야비하고, 거짓되고 무자비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대로 용서하고 화합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 앞에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요셉은 형제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22년 전에 자신을 종으로 팔았던 형들에게 “형님들 접니다” 이렇게 그냥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네 명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12형제이기 때문에 나이 순서와 상관없는 우열이 있습니다. 그 이유로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 온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욥, 다윗, 예수님, 사도들
요셉이 특별히 친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는 이유는 형들이 자기는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려 하다가 겨우 죽지 않고 팔려왔는데, 이렇게 무자비한 형들이 과연 동생 베냐민을 가만히 두었을까. 베냐민도 형들에게 많은 고생을 했을 텐데, 그래서 베냐민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나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속뜻을 모르는 형들은 그저 억울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억울할까요? 요셉의 형님들도 억울합니다. 곡식 사러 와서 값 지불도 다 했고, 구걸하러 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억울하게 하나? 정탐꾼이라고,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은잔을 훔쳤다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얼마나 억울한가. 그러면 형들이 억울한 것을 요셉의 억울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점검할 것이 있습니다. 37장에서 형들이 요셉을 팔았고, 39장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그런데 38장에서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등장하여 요셉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38장에서 유다가 경험한 일은 44장과 45장을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합니다. 즉, 44장에서 유다가 “내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습니다” 고 희생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데는 유다의 삶에 뭔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38장에서 유다의 인생에 커다란 U자 곡선이 그려집니다.
37장에서 형제들과 가담하여 요셉을 팔아먹을 때 유다는 악한 죄에 가담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요셉을 물어 죽었다고 22년 동안 완벽하게 속였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슬피 울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아버지가 매일 탄식하는 것을 보면서 유다는 차라리 요셉을 종으로 팔았다고 이실직고할까? 집안 분위기가 무거운 가운데서 유다는 “에라 모르겠다. 언약의 집안이고 뭐고 필요 없다. 가족도 필요 없다.” 혼자서 집을 떠나 가나안 사람으로 섞여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요셉의 의문사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납득할 만한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자기 혼자 언약의 집안에서 떨어져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더 불미스러운 것은 며느리와의 통간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데 이 사건이 유다에게 큰 충격과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아니라 창녀인줄 알았다. 장남이 다말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둘째가 형수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차남이 형의 아들을 낳아주기 싫어하여 땅에 설정한 것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죽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래서 셋째 아들에게 며느리를 줘야 하는데 아직 어리므로 성인이 될 때까지 친정으로 보냈다. 그런데 셋째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며느리를 부르지 않자 다말이 꾀를 부렸다. 창녀로 변장해서 “시부를 미혹해서 시부를 통해서라도 내가 이 집안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이 집안의 아들을 낳아서. 그래서 유다는 화대로 자기의 담보물로 인장반지, 지팡이, 양 치는데 필요한 끈, 세 가지를 주고 통간하고 아무 죄책감 없이 살고 있는데, 다말이 임신한 사실을 보고 동네사람들이 유다에게 고자질한다. “네 과부 며느리가 임신했다.” 그랬더니 유다가 화형을 명한다. 다말이 화형당하기 직전에 담보물을 꺼내 보인다. “내가 이 물건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임신했습니다.” 누구의 물건인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를 보고 유다가 한 말,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 이후로 그를 가까이하지 않더라.” 요셉 이야기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괜히 37장 뒤에 끼어들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자기가 언약백성임을 포기하고 가나안 사람으로 살려고 내려갔었는데, 거기서 언약의 후손인 유다는 언약을 버리고 살고 있는데, 가나안 여자 다말은 언약과 상관없는 인생이었는데 언약의 집안에 시집와서 살고 있다. 남편들이 다 죄를 지어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는데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집안 아들을 낳고 싶어 한다. 그 셋째를 주지 않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첫째 아들 둘 째 아들을 잃었을 때 아들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징계로 죽임을 당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셋째 아들을 주면 그도 죽을까 하여 며느리를 쫓아냈던 자기의 죄를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는 언약을 버리고 살면서 며느리를 화형시키려 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다. 그 일 후에 유다는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44장에서 아버지를 설득하는 장면이 나오고, “내가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곡식을 사올 수 없습니다.” 이들은 아직 요셉의 신분을 알지 못한다.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볼모로 잡혀 있는 시므온을 풀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곡식을 줄 수 없다. 막내를 데려 와라. 그러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아직까지도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튼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여러 아들 중에서 유다가 해결사로 나선다. “내가 책임질 테니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아버지” 그래서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하필이면 은잔이 베냐민의 곡식자루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요셉이 일부러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서 데리고 왔는데 베냐민이 종으로 사로잡힐 운명에 처했다. 그러자 유다가 하는 말, 44:16 “우리가 모두 종이 되겠습니다.” 이대로 베냐민을 잃고 올라가서 아버지가 졸도하시게 하느니 다 종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제안합니다.
요셉은 “아니다. 은잔이 발견된 자만 종으로 삼겠다.” 이때 유다는 “막내 대신 내가 종이 될 테니 베냐민을 풀어주십시오.” 그는 베냐민보다 자기가 종이 된 것이 아버지께 덜 충격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요셉은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 확인했습니다(45:1). “나를 팔았던 유다가 나와 똑같은 형제 베냐민을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형들이 이제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베냐민을 위하고 있구나.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버지에게 진정으로 효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이것을 확인한 후에 형들을 용서하기로 하고 자기의 신분을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억울함, “아니 우리가 무슨 정탐꾼이라고? 왜 도둑으로 몰아, 우리를 왜 볼모로 잡아.” 이런 식으로 억울함이 한 순간에 풀렸습니다.

[인쇄하기] 2017-12-23 16: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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