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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마 6:9-13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7.2.19
  

제목: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본문: 마 6:9-13
주기도문만 잘 이해하면 기도생활에 문제가 없다. 주기도문 자체를 그대로 기도할 수도 있고, 그 내용을 응용 확장 적용하여 기도할 수 있다. 토씨하나를 음미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요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가 좋은 본보기 이다. 주기도문은 그 자체에 주문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예배 의식의 틀에 박힌 하나의 순서로만 여기도 안 된다.
신앙생활의 상당부분은 기도생활이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대부분 수동적이다. 한 시간 예배 중에서 찬송, 기도순서처럼 올려드리는 순서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앉아서 설교를 듣는 것이 전부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주1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라면 너무 빈약하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 성장하려면 기도생활이 잘 잡혀야 한다. 그런데 기도생활이 의식, 형식종교를 따라가면 피곤한 시간이 된다. 기도는 ‘아빠’(아바 아버지)와 친밀한 대화시간이 되어야 한다.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신 것이 두 가지 있다; 외식과 중언부언.
먼저, 외식이란 무엇인가?(2,5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1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대화는 서로 소통하는 것인데, 기도를 단지 종교적인 행위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는 없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외식으로 기도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또, 중언부언이란 무엇인가?(7절)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같은 내용의 기도를 세 번 반복해서 기도하신 적이 있다(마26:44). 이것이 중언부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간절함이다.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립할 때, 자기를 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신 것이다. 인간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괴롭고, 두려웠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간절하게 반복해서 기도할 수 있다. 중언부언이란 할 말도 없으면서 사람을 의식하거나, 길게 기도해야 응답받을 줄 알고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로 설교하기”도 부적절하다. 그것이 왜 나쁜지 생각해보시라. 그런 내용은 대표기도 시간 끝나고 간증이나 세미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어떻게 몇 시간 씩 기도할 수 있을까? 기도의 사이즈는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비례한다.그러니까 주제에 따라 할 말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사랑하면 그(것)를 위해 오래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는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보기도이다. 자기 발등의 불을 끄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이다. 주기도문은 여섯 가지 주제로 이루어졌다.

서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히브리어로 ‘아빠’이다.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불러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가 되고 싶은 아빠, 그런 엄마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분. 구약성경에는 ‘아빠’가 15회 나오지만 유추로만 나온다. 예를 들어서 “그는 네 아버지시오,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냐?” 직접 하나님을 향하여 호칭하는 용례는 없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니까 버릇없다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그 친밀한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기도문만 잘 이해하면 기도생활이 풍성해진다. 주일 예배가 신앙생활의 전부라면 너무나 불안하게, 줄 하나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란 공동체를 의미한다. 함께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염두에 두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이루고 있는 여섯 가지 기도제목들을 살펴보자.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이 본래 받으셔야 마땅한 그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북왕국 멸망 후에 남왕국은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으로 착각했다.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전까지도 부숴버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2. 나라가 임하시오며: 세상 나라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다. 나라마다 국경과 통치방식이 다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적인 나라이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성도가 가는 곳에는 세상의 부조리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통치가 다스리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타락하면 백성들이 모두 혼란스럽게 된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대리하는 사람들이다.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는 악이 횡행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보내어 그분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마26:39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신 것처럼 우리의 뜻을 내려놓는 기도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오히려 “아버지의 뜻대로 마옵시고, 내 원대로 하옵소서”하며 내 뜻을 관철하려고 기도하지 않는가?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만나를 한 사람에 하루 한 오멜씩만 거두게 하셨다(출16:16). 또한 “일용할 양식”은 먹을 양식만이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다.  1966년 문화혁명 때, 티벳의 많은 승려들이 모택동의 칼을 피해 인도로 피신했다. 그런데 평상시에 자기의 부를 자랑하던 승려가 있었는데 그는 수백마리의 소떼를 끌고 강을 건너다가 잡혀 죽었다는 실화가 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만 하니까 기도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는 남을 정죄하기 이전에 나도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시험을 받는 이유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유혹(눈으로 보는 대로)에 따라 자기 욕심에 이끌려 판단하기 때문이다(요일2:16,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에 들면 인생이 허비된다. 그래서 미연에 방지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대한 악의 구조 속에 들어가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좋은 일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마지막에 (대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 모든 기도를 총괄하는 말이다. 세상의 통치자, 권력자는 바로 나의 아빠이십니다. ‘아빠’는 자녀만이 부를 수 있는 호칭입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예배의식 용도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다. 한 단어 한 단어 자기 삶에 적용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기도로 삼자. 주기도문만 잘 해도 기도 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주기도문만 잘 이해하고 기도생활을 하면 동북아 전체가 행복해진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의 능력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인쇄하기] 2017-03-14 19: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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