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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생명의떡 (요6:22-36)
  

  미국의 코메디언 야코프 스미르노프는 러시아에서 이민와서 경험한 일화들을 즐겨 이야기한다. 쇼핑센터에 갔더니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파우더 수프, 파우더 밀크, 쥬스, 좋구나! 그런데 한 칸에 보니까 베이비 파우더가 있더라. 이 나라는 베이비도 인스턴트가 있구나! 우리나라도 인스턴트가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라면이라는 인스턴트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컵라면을 만들었다. 커피도 갈아서 드립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봉지커피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인스턴트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원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내어놓으시라고. 그러나 우리의 요구대로 맞추려면 예수님도 장기 계획을 세우실 수가 없다. 주님은 인생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해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퍼즐의 한쪽 면만을 보고 맞춰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같다.
  요12장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며 예수님을 환영했다. 이렇게 예수님께 큰 기대를 가지고 모여들었던 무리들이 기대한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새로운 왕이 오면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께 환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초라하게 나귀 새끼를 타셨다. 말은 키가 커서 전쟁에서 보병이 상대할 수 없지만 나귀는 키가 낮아서 공격받기 쉽다. 예수님은 스가랴 9:9의 예언대로 “구원을 베푸실 평화의 왕”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겁을 낼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그렇게 초라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의 메시야 예언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메시야가 속히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는 한 면은 맞지만 한 면은 맞지 않았다. 주님의 구원은 한 시대의 구원, 땅의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영원토록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온전한 구원을 주시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이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출12:3)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희생당하셨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한 주간이 무교절이다. 첫 번째 유월절 이후 1400여년이 지난 유월절에 죽으셨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1400년만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구원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길지만 온전히 이루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2017년 이 한 시대동안에도 “나는 오늘 어떻게 하면 주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주님의 시간관념을 가지고 따라가야 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랐지만 인스턴트를 원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호산나'라고 외치던 무리들도 일주일이 못 지나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돌변했다. 오천 명을 먹이시던 사건을 경험한 무리들도 예수님을 배반한다. 6:54-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모세가 40년 동안 만나로 먹였던 것처럼 ‘이 분을 따라가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구나. 이분이 바로 모세가 신18:15에서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로구나" 생각한 것이다(6:15).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앞세워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해방을 얻으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므로 그들을 떠나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랬더니 22절부터 사람들이 동요했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의 왕이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대하여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18:36)." 유대인들은 정치범으로 몰아서 고발했지만 정치감각이 뛰어난 빌라도는 그를 심문해보고 무죄임을 확신했다(18:38).
예수님의 선교본부는 갈릴리서안의 가버나움이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오병이어를 먹이신 사건은 벳새다, 무리를 떠나 기도하러 가신 곳도 벳새다이다. 거기에 배는 한 척뿐이었는데 제자들만 그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떠났다. 백성들은 예수님은 배에 오르지 않고 제자들만 떠나간 것을 보았다. 그 소문을 듣고 디베랴에서도 사람들이 벳새다로 찾아왔다. 오병이어의 이적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찾고 다닌다.
무리가 예수님을 이렇게 애타게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적을 보고 따르는 것이라고 책망하신다(6:26)."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 말씀을 다른 번역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TEV: “너희가 내가 행한 기적의 의미를 이해해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
   메시지성경: “내가 행한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한 끼 밥을 먹었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책망조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님: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장 큰 기적을 행하신 후에 가장 처절한 배신을 맛보신 것이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절),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
  적어도 일만 명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말씀이 어렵다고 다 떠나버렸다. 쓰라린 배신을 당하셨다. 그때 아픈 마음으로 67절에서 “너희도 가려느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로한다. 68절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인스턴트를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물으신다.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그러면 베드로처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주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기다립시다. 그저 물질과 한 끼 식사를 위해 영혼을 팔지 말고, 온전하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주님 따라갑시다. 잘못된 기대는 배신을 가져온다. 잘못된 것을 기대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배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온전하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인쇄하기] 2017-04-28 15: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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