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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거룩함을 따르라 (히12:14-17)
  

제목:  거룩함을 따르라        본문: 히브리서 12:14-17    
 리차드 니버가 쓴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 보면 세상의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를 몇 가지 유형으로 설명합니다. 1.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교회와 세상이 매사 싸운다.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만을 추구한다.2. 문화속의 그리스도: 성도가 세상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 신앙과 세상의 문화의 경계가 없는 자유주의자들이다.3. 문화 위의 그리스도: 기독교가 문화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 말은 그럴듯한데 이것이 말하는 것은 중세시대와 같은 패러다임이다. 교회가 세상을 다 지배하다가 결국은 교회도 썩어버렸다. 4.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변혁시키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신앙의 양심으로 정의롭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오히려 세상에 침몰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성도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삶의 정황이 그런 것입니다.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님의 구원을 믿었더니, (형식적인 율법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유대교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오늘날 이슬람과 비슷해서 정치, 경제, 문화가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경제 문화 생활 전반에 걸쳐 지배합니다. 그러니 그런 종교공동체에서 배척당하면 경제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영원한 예수님을 선택했으면, 유한한 것으로, 불완전한 것, 땅의 것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들어라. 이것이 히브리서의 핵심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기독교를 배척할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엡2:2)가 성도와 교회를 쓰러뜨리기 위해 다양한 냉온작전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요6:15), 심지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떠받들기도 했습니다(행14:11). 그렇게 매혹적인 방법으로 다가오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14절을 바로 번역하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그리고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즉, 거룩하지 못하면 주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거룩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강조하는 것일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 속에서 성도가 어떻게 거룩함을 따를 것인가?
본문에 ‘거룩’에 반대되는 자들에 대하여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1.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과 영생의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힘 있고, 부유한 자들이 모이고, 좋은 건물이 구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들이 모여야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모든 것에 값지불을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값을 지불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의무감으로 종교생활 한다면 이것은 허무한 노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어르신들일수록 거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평생을 값 지불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값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형식이나 착하게 살아야만 구원해주신다고 생각한다면 은혜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2. 쓴 뿌리: 마음에 원한과 서운함이 해결되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데 30, 60, 100배로 결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쓴 뿌리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기간이 길수록 제거하기 힘들어집니다. 쓴 뿌리에는 강력한 제초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부어서 제거해야 합니다. 쓴 뿌리를 계속 간직하면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버티다가는 오히려 더 큰 가해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거룩함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이 쓴 뿌리입니다(사울왕, 압살롬, 바리새인)
3. 음행하는 자가 없도록 해라: 성경에서 음행은 항상 우상숭배와 밀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왕국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여기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으리라”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서도 착각한 것입니다. 영적인 음행이란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세상의 모든 우상(물질)에 두는 것입니다.
4. 에서처럼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에서는 11장에서 소개한 믿음의 영웅들과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장자권을 판 것이 왜 망령된 행위입니까?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가 장자권을 팔라는데 죽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서 지나가는 말로 “그래 너 가져.” 이렇게 말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나중에 창세기를 읽어보더라도 오히려 그에게 연민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사건은 아담의 타락 사건과 매우 닮은 점이 있습니다. 선악과가 값이 얼마나 하겠어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중심에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은 불신하고, 마귀의 말을 신뢰했다는 것이 큰 것입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팔아버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권이 그렇게 말로 팔고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에서는 그까짓 것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을 간절히 사모한 것입니다. 에서는 그 언약을 장난으로 여겼어도, 야곱은 질투할 정도로 부러워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절망의 때에 늘 두 가지를 점검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Yes. 두 번째, 네가 지금 하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Yes. 그러면 앞이 안 보여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절망하여 백리를 갈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은 더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절망 가운데서 다시 또 진보할 힘을 주십니다.

마귀도 유혹할 때 똑같이 말합니다. “이번 한 번만이야. 그냥 입에만 한 번 대볼래?” 하나님도 믿음으로 한 발만 내딛으라. 그러면 그 다음 발 내딛을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거룩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성자들이나 가능한 삶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인쇄하기] 2017-04-28 1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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