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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신원섭 [ E-mail ]
  세상의 빛 (요한복음8:12-20) 17.4.23
  

제목:  세상의 빛        본문: 요한복음 8:12-20
한 사람이 평생 금광을 찾다가 포기한다. 그 다음 사람이 한 삽을 파자 금맥이 나왔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실제 비슷한 일이 많이 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있다면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메시야가 오실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해서 주님을 눈앞에 두고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왕에게 보내실 때 모세가 물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출3:13)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출3:14)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셨다. 이 말이 1세기 헬라어 성경에 “에고 에이미”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로 받아들이는 신학적인 용어였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 표현을 177회 사용하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밝히 드러내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세상의 빛, 선한 목자, 양의 문, 부활, 길, 진리, 생명, 포도 나무이다.”(ego eimi = I am은 '나는 ~이다'도 되지만, '나는 존재한다'의 뜻도 있다. '여호와'는 영어로 번역하면 'I am who I am'이다. 이 말은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제3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는데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네가 너를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않다(13절)”고 반박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증인들을 데려 오지 않고는 어깃장 놓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본인이 증거하고, 아버지가 증거하시니 두 명의 증인이 충족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인정할 수 없는 증언이다. 민수기 35:30의 율법을 몰라서 그러신 것이 아니다(고소가 성립되려면 두 명 이상의 독립되고 일치하는 증인이 있어야 한다-17절). 우리는 영적으로 알아듣고 ‘아멘’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말씀은 이 논쟁에서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이다. 미친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할 사람들이 있었나? 이미 그를 메시야라고 고백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다나엘(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 1:49), 니고데모(3:2),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4:29),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침 받은 병자(5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6장), 이런 증인들을 얼마든지 데리고 오실 수 있지만 데리고 오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빌라도, 헤롯을 찾아가지 않으셨다. 충분한 기회를 주었으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느 시점이 되면 안 찾아가신다. 젊어서 쾌락을 즐기다가 늙어서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을 즐기다가 천국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이 그때 가서 회개할 마음을 안 주시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박사학위논문을 쓸 정도로 잘 알고 있지만 믿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요10:24에서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그랬더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10:25-26).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줬어도 이들에게 표적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쫓아와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요구한다. 표적을 본다고 믿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병 고쳐주시면 믿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믿음은 다 사라진다. 내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손해 보더라도 주님 따라갑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 주를 믿고, 평생 주님을 따르고, 천국 가기까지 주님 따라가지요. 뭣 좀 체험하고, 고침 받고, 본 사람들 다 필요 없더라.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증인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곧이곧대로 말씀하신다. 내가 증언한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증언한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앞에 오셨고, 만나고, 가르치고,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 세 가지가 본문에 나온다.
1. 그들은 어둠에 다니기 때문에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 신앙이 좋다고 자만했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어둠에 다니는 자들이었다. 가장 거룩한 척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어둠에 행하는 자들이었다. 기득권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의 이치 속에서도 빛은 생명을 준다. 빛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생명체들은 거의 다 빛이 있어야 살 수 있다. 햇볕을 보지 못하면 멜라톤이 결핍되면 우울증에 걸린다. 그러면 집에서 나오기 싫고, 그것도 부족해서 이불을 쓰고 있다. 점점 더 어둠 속에 가두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햇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면 결국은 멸망, 죄악의 길에 빠지고 만다. 빛은 또한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위험이 있는지 판단의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행한다고 하는 것, 요일1: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2.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육체와 외모로만 판단했기 때문에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버지 이야기 하면 요셉을 떠올리고, '내가 속한 곳'이라면 갈릴리만 생각한다. 이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너를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네 형제들 이름 다 안다." 이런 식이다. 인간 예수에 대해서 알았지만 메시야이신 예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 어쩌다가 한 끼 얻어먹었을 뿐이다.3. 바리새인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 하는도다. 나를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리한 주장을 한 것 같지만 이미 이들에게 수많은 이적과 교훈으로 깨우쳐주셨다. 특별히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수차례 주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를 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 정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밝히 들었고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며 의지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참 소망입니다.
우리도 어둠에 다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예수님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생이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빛이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에게 그 생명의 빛이 필요하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인쇄하기] 2017-05-29 19: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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